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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개별필지 건축행위는 도시의 최종적 환경을 그려내지 못한다. 도시계획 역시 공공의 이익, 안전, 효율적인 유지관리를 목적으로 거시적 차원의 도시구축의 밑그림을 그려내지만, 도시 질적 환경의 총체적 관리 면에서 적용되지 못한다.

거시적 차원의 도시계획적 이념과 건축적 창의가 서로 공존하며,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조화롭게 조성할 수 있는 매개적 장치인 도시설계(Urban Design) 방법이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슬럼화 되어가는 도시들을 문제점을 보며 도시설계에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느낀다.

파리 방리유 소외계층을 위한 도시 재개발계획 사례 : 보비니

대도시의 외곽 지역을 뜻하는 프랑스의 방리유(Banlieue)에는 과거 프랑스 노동자나 빈민자들을 위한 공영주택(Logements Sociaux)들이 획일적인 형태로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고, 이후 외국인과 이민자들의 생활의 터가 되어 실업과 인종차별이 잔재해왔다. 이민자들과 그 2, 3세에게 겉으로는 평화롭게만 보이던 프랑스는, 2005년 방리유 소요사태를 기점으로가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이민사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제도적인 불평등의 불만으로 크고 작은 폭력과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프랑스 방리유 도시에서의 ‘치안’문제는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큰 논제가 되었고, 어떻게 이 소외계층을 사회 통합할 것인지가 최대 국가정책 과제로 부상시켰다. 이에 사회전반 제도가 아닌 근대 도시계획의 문제점만을 해결을 위한 건축적 투자 방안은 임시방편적 대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이 되물림 되어 생활환경이 계속 열악 하기만한 이 지역에, 주민들과 더불어 정부가 관여된 서민주거단지의 재개발계획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보비니는 파리시에서 약 10km 떨어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평원의 중심지에 있다. 처음 농업지역이었던 이 곳은 두 세계대전을 거치며 수도인 파리로 몰려든 사람들을 위한 노동자 주거 밀집지었고, 1964년에는 샌생드니(Seine-Saint-Denis) 지역의 행정 줌심지가 되었다. 행정도시로서의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이미지를 갖기 위해 시에서는 보행자와 자동차의 동선을 수직적으로 분리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콘크리트로 입체적 인공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도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근대운동에 따른 이론적 배경에 입각하여 만들어낸 도시형태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도심 중심성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위협감을 주는 ‘무법의 주택단지’처럼 보이는 인위적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민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근대운동의 지배적인 도시적 이론을 지속하기에는 곤란한 여러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근대 주택수요의 양적 문제 해결은 이 보비니 중심도시의 고유한 경관, 지역적 아이덴티티, 공간의 연계와 맥락을 지워버린 것이다.

주민들이 갖는 치안에 대한 두려움, 도시형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1998년부터 시청에서는 이미 도시재개발 연구와 국제 현상설계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 도시재개발에 들어갔다. 개발 당시 외면되어왔던 시간적 차원의 중요한 도시개념인 과거 도시조직(tissue urbain)의 특징 및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 가장 큰 지적 이였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 사유지로 인정되는 ‘필지(parcelle)’의 부재는 그 도시 주민들의 창의성과 다양성, 도시 복합성의 수용 가능성을 억누르는 암묵적인 폭력이 되어온 것이다. 또한 인공대지를 깨고 보행자가 원래 자연적인 지면위로 되돌아가고, 가로와 광장, 공원에 공공공간을 형성하며,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 사이의 위계를 형성하는 제안들이 나타났다.

인공지반에 의한 도시건설의 기원

근대사회는 산업사회이자 민중, 대중 사회이며, 도시 형태에 있어서도 더 이상 소수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사회전체의 해방과 전환의 밑거름이 되는 유토피아 형태를 요구하게 되었다. 자생하는 도시의 무질서하고 비위생적인 거주환경에 대한 적절한 계획과 통제의 필요성, 그리고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을 탈피하려는 노력은 1928년 근대건축국제회의 (CIAM : 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를 기점으로 나타난다. 도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실체가 아닌 기능적 존재로 단순한 건축형태의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방리유에 나타나는 주택형태 또한 빈민층의 주택수요를 위한 효율성을 고려하며, 표준화, 규격화 및 산업화와 연결된 대량생산이 가능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특히 보비니 뿐만 아니라 60, 70년대 파리 방리유에 많이 적용되는 거대한 콘크리트 테라스 인공대지를 위한 도시계획은, 1933년 아테네 헌장에서 보여지는 기능의 분리, 교통체계의 분리, 고층화 그리고 차로부터 해방된 넓은 공간 등의 개념이 잘 보여진다. 이렇게 보비니 중심도시에 적용된 인공지반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가? 그 기원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자.

16세기 레오나르드 다빈치 는 그의 스케치를 통해 길을 두 층으로 나누어 지면에는 마차 등의 교통 및 화물 수송공간으로, 그 위에는 고위층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그렸었고, ‘메트로폴리스’ 와 같은 미래도시 영화에서는 도시 저층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고층에는 그들을 감시하고 지도하는 지도계층이나 자본가들로 나누어지는 것을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입체적 구분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수직적 구분을 상상했던 것이었고, 기능적 동선의 분리를 제안한 것은 기술과 교통이 발달,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나타난 18세기 이후이다.

프랑스의 도시계획가이며 건축가인 오젠에나르(Eugene Henard, 1849-1923)는 프랑스 백주년 혁명기념 세계전시회(Exposition Universelle, 1889) 때, 당시 도시의 문제점, 즉 비위생적인 주택가, 전통적인 가로의 비적합성 등을 제시하면서 플랫폼으로 길의 층을 두는 연구와 제안을 발표했었다. 이 제안은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분리가 아닌, 위험하고 유해한 도시의 배수관 및 하부시설과 교통로를 정리해보자는 첫 기능적 분리의 제안이었다.

근대건축과 국제주의 건축의 선구자인 르꼬르뷔지에(Le Corbusier)는 필로티 도시 (Ville-Pilotis) 프로제 제안을 통해 길들이 분리되어 서로 다른 층을 이루는 시스템을 발표했다. 오젠 에나르가 길의 중첩만을 제안한 것과는 달리, 르꼬르뷔지에는 기둥-보 시스템을 이용해 거대한 도시 스케일로 적용하려 하였다. 이후 1922년 파리에서 열린 추계전시회(Salon d’Automne)에서 그는 300만 시민을 위한 현대도시 계획안(Le Plan d’une ville contemporaine de trois millions d’habitants) 전시와 그의 저서 ‘도시계획(Urbanisme)을 통해, 광대한 테라스로 형성된 구체화된 아이디어를 밝혔다. 인공대지 상부로는 평화롭게 거닐 수 있는 보행자를 위한 녹지를, 그 하부로는 3가지 형태의 중첩된 길 (중형무게 통과도로/ 저속주행도로/ 고속주행도로 - Poids lourds / Vehicules baladeurs / vehicules rapides)을 제안했다.

독일의 힐메르자이머(Ludwig Hilberseimer), 는 교통안전, 특히 학생들 이동이 있는 곳의 교통 속도에 대한 안전문제를 강조하면서 가로 위계를 갖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다. 안전한 보행을 위해서는 자동차와 구분된 전용 보행로와 가로 상부의 브릿지를 입체적으로 연결하여 보행자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제안했다.

파리에 실제로 인공대지를 적용시킨 것은 건축가 레이몽 로페(Raymond Lopez)에 의해서 이다. 1957년 센느 경시청 내 도시계획부가 잘못 이용되고 있는 블록들을 조사하면서, 로페에게 도시계획안(le plan Lopez 57)을 제안하게 했고, 이것은 4 년 후에 파리의 Front de Seine구역에 적용되었다. 그는 파리 15구의 센느강을 따라서 25헥타르에 걸친 Front de Seine 를 통해 수도로서의 신도시형 도시형태를 반영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지면에는 자동차 교통동선을 놓고, 6미터 들어올려진 인공대지 위는 보행자 전용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공대지 위의 건물 두 개 층은 사무소로 이용하고, 85미터 높이의 타워형 아파트를 사무소 위에 건설하도록 하여 수직적인 기능분화를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도 급속히 증가하는 자동차량으로 인한 도시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적합한 도시환경을 제공하려는 구체적인 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1961년 교통부 장관이었던 Colin D. Buchanan는 교통 연구를 통한 이 보고서(Rapport Buchanan)를 가지고, 차량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도시형을 제안했다. 특히 도로와 도로주변의 위험요소, 공해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세로로 겹쳐져있는 가로 시스템을 제안하게 되었다.

보비니 인공대지 위 타워형 저가 임대 아파트(HLM)의 건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 많은 노동자들이 파리근교의 공장에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고, 농경지였던 보비니 역시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보이며 주택난을 겪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외곽에 3개의 노동자들을 위한 집합주거 (l’Abreuvoir, l’Etoile, Pont-de-Pierre)가 생기면서 보비니의 인구는 급속히 늘어났고, 이러한 도시팽창은 각종 도시시설과 교통 및 각종 서비스 인프라 시설을 요구하게 되어 도시정비가 시작된다.

1965년부터는 중심도시가 우선정비구역(ZUP)으로 지정되면서 정비활동은 적극적으로 진행되면서 도청 및 도청관련 업무시설, 법무원, 문화의집, 거대 중심상가, 사무소 밀집지, 공공서비스시설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보비니 중심도시의 계획가인 미셜 홀리(MICHEL HOLLEY)는 주거단지에 인공지반을 제안하면서 주거타워를 탑들의 다발(Bouauets de tours)’라고 표현했다. 이는 탑형 아파트가 여러 개 모여 700-1200세대의 주거를 이루고 있고 인공지반에 의한 단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인공지반은 두 개의 레벨로 이루어져있고, 인공지반 하부는 2,3개층의 각 단지 주차장으로 활용되었다. 인공지반 위로는 녹지 공간, 상가 및 사무소가 보행동선과 어우러져 계획되었다.

25년에 걸친 대 공사가 시작되었다. 과거의 도시조직을 완전히 없애면서 백지화된 대지 위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중심도시였다. 1967년 시작된 공사로 각종 주거단지와, 경시청(Prefecture), 상업건물(Centre Commercial)과 시청(Hotel de ville) 등 관공서 및 문화시설을 건설했고, 각 블록들은 인공지반이나 육교를 이용해 연결이 되었다.

1975년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경제적 난관에 부딪힌 보비니 시는 2년간 공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도시정비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약간의 계획이 수정되었다. 거대 집합단지 형성의 계획을 바꿔 더 작은 크기를 적용하였다. 일단은 비용의 부담을 줄이고, 비 인간적은 척도를 수정하기 위함이고, 거대 콘크리트로 이뤄진 인공지반과 탑형 아파트를 피하기 위함 이였다. 따라서 이후 주거단지부터는 건물의 높이를 낮추고, 개인주거를 소유, 획일적 형태의 탈피하며, 건물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도심 밀도를 줄이기 위해 지어졌다. 특히 인공대지 위에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자연대지 위에 건물을 짓고, 차도와 인도를 구별하는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다. 인공지반은 주차장을 위해 존재하기는 하지만 주차장 위에는 공공장소가 아니라 사적인 장소가 되었고, 보행자의 흐름은 자연대지로의 복귀가 이뤄졌다.

보비니 중심도시 도시형태 문제점

도시의 주택난과 저소득층의 주택공급을 위한 근대건축가들의 제안은, 르꼬르뷔제의 ‘빛나는 도시’ 계획안처럼 ‘공원 속의 고층주거(tower in the park)’의 형태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는 비위생적이고 기능적이지 못한 도시조직과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인 동시에, 전 근대적인 토지소유개념을 재고찰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의 용지를 공유하자는데 있다.

자동차가 이동하는 가로는 커다란 블록주위에 머물러 블록은 과거 블록의 크기에 비해 거대해졌다. ‘열린 공간, 녹지 공간, 자유로운 공간’이란 이름 하에 공동으로 운영하는 광대한 공원 위에 목가적인 주택가를 만들려는 근대도시개념은 어쩌면 인간본성을 원래 선하다는데 너무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공공간에서 사적 공간까지 위계질서의 결여는 불안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푸르른 녹지를 위해 나무를 심기만한 공간의 형태 및 구성의 단순성에서 말미암은 문제이다. 특히 보행자의 자유로운 산책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인공지반 위는 사람들이 거의 접근하지 않거나, 단순한 빠른 통과를 위한 공간으로만 이용될 뿐이고, 그 위의 사무소나 상가들도 이용되지 않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고층 타워형 아파트 주위의 거대한 공지뿐만 아니라 인공지반 위의 보행자 전용 공간도 흑인이나 아랍계열 청소년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었고, 주민들은 빨리 통과해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부담스런 공간이 되었다.

도시 주거 환경에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주차공간이나 기타 인프라 시설이 숨겨져 있는 인공지반 밑의 공간은 빛이 들어가지도 않고, 주차장을 오고 가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위협감을 느낀다. 사실 방리유 범죄소식을 접할 때, 이 주차장들은 차량 방화가 일어나는 주요장소이다. 경비원도 없고, 감시카메라도 없는 이 곳에 자동차를 주차하기 불안해하는 주민들은,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더라도 이동자들에 의해 자동감시가 되는 가로에 주차를 하기 시작했고, 특히 보이지 않는 구조체물에가 아니라 타워에서도 창문을 통해 감시가 가능한 곳에 주차하기를 원했다.

근대 건축물의 재정비 프로젝트들을 보면 대부분 스케일 (ECHELLE)에서 정비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비인간적인 척도의 건물과 공간은 규모에 비해 값싸게 지어진 근대 건물, 도시는 특히 건물의 유지 관리에 문제점을 준다. 거대한 척도로 땅을 들어올려 인공대지를 만든 것이나, 고층 아파트의 어마한 높이로 인해 사람들을 짓누르며 소외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저가공동주택단지(HLM)를 유지 관리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인공대지 및 사유화되지 않은 거대 대지를 재개발하기에는 주민 대부분이 빈민층 이민자들이고,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거대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획일화된 아파트의 형태와 공간구성의 단순화로 단지별 정체성의 결여도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다. 평등, 투명성, 순수성, 반복, 동등한 공간구성, 경제성 등은 근대도시계획의 구호였으나 이러한 단순한 프로그램의 적용은 활기가 없고 무미건조한 도시분위기를 만들 뿐이었다.

보비니 중심도시 재개발 방향

보비니시가 샌생드니(Seine Saine Denis) 지역의 도청소재지가 된지 40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는 사회적 인종문제만이 아니라 도시 구조물이 서서히 낙후되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1998년부터 ‘시회의(Les Assises)를 통해 주민, 정치인, 도시계획가, 이용자들의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도시재개발을 위한 국제 현상설계가 진행되었고, 이에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는 4개 그룹(Paul Chemetov et Borja Huidobro/ Daquin et Ferriere/ Antoine Grumbach et Nicole Eleb-Harle/ Treuttel-Garcias-Treuttel)이 일차로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각각 그룹의 장단점과 보완점을 보면서 한 설계사무소를 당선시킬 것이 아니라 4개의 그룹이 같이 협력해 한 아뜰리에가 되어서 같이 보비니 시를 연구하고, 재개발에 참여해 주기를 부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설계 조합인 아뜰리에 ABC에 의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계획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큰 컨셉 중의 하나는 주택 사유화 (RESIDENSIALISATION)이다. 다시 말해 저가임대주택만이 아니라 분향형 주거를 삽입시키고,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용도 없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을 필지를 나누어 집합정원으로 사유화 하려 한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재정의 하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도시의 가로를 재해석하기 시작하여, 전통가로의 장점을 적용시키려 하였다. 다시 말해, 인공지반 상부에 이뤄진 이 중심도시에는 위계적인 가로가 없다. 거대한 블록주위로만 차량이 이동하고, 보행자와 상가, 사무소는 가로와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 적정한 도시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근대도시계획가들이 경계하던 ‘가로’에는 자동차의 위험성만 도사리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긴장감만이 아니라 수많은 복합성과 가능성이 있고, 자연으로 덮여 있는 거대한 공지 보다는 더 많은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연속해 있는 1층의 작은 상가들과 차도 사이의 보행자도로, 가끔가다가 맞닥들이는 작은 공공쉼터는 더 풍부함이 깃들일 수 있다. 따라서 보비니시에는 인공지반을 걷어내고, 원지반 레벨에 보행자 보도를 만들어 좀더 길과 연계된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새로운 주거공간을 위해 협의개발지구(ZAC)을 두어 거대 타워형 아파트 보다는 좀더 세련된 형태의 중저층 건축물을 두어 도시형태적, 사회적 복합성을 두려고 하였다. 보비니 중심도시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60,70년대 재개발 계획 시 과거의 도시맥락을 무시한 채 기존 건물들을 다 부수고 새로이 정지작업이 된 대지 위에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시간의 층이 차곡차곡 쌓이는 지속 가능한 도시상을 무시한 결과는 오히려 슬럼화를 가속시킬 뿐이었다는 데서 교훈을 얻고 찾아낸 해결방안이다. 도시조직 면에서 새로운 주거유형인 중저층의 주상복합의 건물은 좀 더 인간적인 척도에서의 디테일과 디자인이 첨부되었고, 가로에서 보행자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 건축물이 되었다. 시민들의 문화시설과 복합된 학교시설은 치안이 강조되고 주민과 소통하는 단지 내 중심시설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